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마르코의 복음서 (문단 편집) === 예수 그리스도의 에우앙겔리온 === ||<-2> 마르코 복음서 1장 1절 || ||<-2> '''Ἀρχὴ τοῦ εὐαγγελίου Ἰησοῦ Χριστοῦ υἱοῦ θεοῦ.'''[* Archē tou euangeliou Iēsou Christou huiou theou.] || || 하느님의 아드님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시작. ||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시작은 이러하다. || || 가톨릭 새번역 || 개신교 새번역 || ||<-2> 마르코 복음서 15장 39절 || ||<-2> '''Ἀληθῶς οὗτος ὁ ἄνθρωπος υἱὸς θεοῦ ἦν.'''[* Alēthōs houtos ho anthrōpos huios theou ēn.] || || “참으로 이 사람은 하느님의 아드님이셨다.” || "참으로 이분은 하나님의 아들이셨다." || || 가톨릭 새번역 || 개신교 새번역 || 마르코는 오늘날 우리가 복음'서'라 부르는 장르를 최초로 '복음'이라 이름 붙였다. '''본래 희랍-로마 문화에서 복음{{{-2 (에우앙겔리온/εὐαγγέλιον)}}}은 정치적으로는 왕의 탄생이나 즉위, 전쟁에서의 승전보 등을, 종교적으로는 구원{{{-2 (σωτηρία)}}}, 행운{{{-2 (τύχη)}}} 등을 가리킬 때 쓰는 말이었다.''' 또한 왕이 죄수를 사면하거나 유공자를 위로하고 격려하는 포상, 백성에게 베푸는 특혜나 선정{{{-2 (善政)}}}도 에우앙겔리온이라 했다. 이 용어를 바울로는 그리스도교 뉘앙스를 담아 '하느님의 힘'{{{-2 (로마 1장 16절)}}}과 연결시켜 사용했고, 마침내 마르코에 이르러 복음'서'를 일컫는 말로 쓰인 것이다. 특히 마르코 복음서의 집필 장소로 로마시가 추정된다는 걸 고려하면, 마르코가 '권력의 복음'과 대조되는 '예수의 복음'을 의도적으로 맞세우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황제께서 태어나신 이날은 전 세계를 다른 모습으로 바꾸었다. 모든 사람을 위한 공동의 번영이 오늘 태어나신 분에 퍼져 나가지 않았더라면 전 세계는 몰락했을 것이다. 제대로 판단하는 사람은 이 탄생으로 삶이 시작되고 생명이 움튼다는 것을 깨달을 것이다. 이날이 가져다준 엄청난 선행에 맞갖게 감사하는 마음을 전할 수는 없을 것이다. 모든 삶을 주재하는 신은 당신의 섭리로 인간을 구원하기 위하여 이분을 이러한 선물로 채우시면서 우리와 다가올 세대에게 구원자(sotēr)로 보냈다. 그분은 모든 전쟁을 끝낼 것이며, 모든 것을 뛰어나게 이루어 낼 것이다. 그분이 나타남(epiphaneia)으로써 선조들의 희망이 이루어졌다. 그분은 인간이 창조된 이후, 선행을 베푼 모든 이보다 훨씬 뛰어났을 뿐 아니라 (그보다) 더 위대한 인물은 나올 수 없을 것이다. '''[[황제]]께서 태어나신 날은 세상을 위한 '[[복음]]'(euaggelion)의 시작이었다. 이 복음은 황제 때문에 생겨났다.''' >---- >-[[소아시아]]에 자리한 프리에네의 연감 비문 그리고 특히나 마르코 복음서가 집필되던 시기에, [[베스파시아누스]] 및 그의 아들 [[티투스]]가 이끄는 로마군이 유다인 봉기를 진압했음을 고려하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라는 말의 의미는 더욱 의미심장해진다. >네로 황제의 사망{{{-2 (68년)}}} 이후 로마제국은 내전 수준의 혼란에 빠져 들었으니, 끊임없이 새로운 황제 지망자들이 자기네 군대를 동원하여 제위를 요구했기 때문이다{{{-2 (69년: '세 황제의 해')}}}. '''그때 동방으로부터 '복음들'이 당도했다. 자기 부대와 함께 팔레스티나에 있던 [[베스파시아누스]] 장군이 이집트 주둔군에 의해 황제로 선포되었던 것이다. 베스파시아누스의 적수들이 로마에서 제거되고 원로원이 그의 선출을 승인한 뒤, 이 '복음들'은 마치 메아리처럼 서방으로부터 동방으로 전해졌다'''{{{-2 (요세푸스 『유다 전쟁사』 IV 618.656)}}}'''. 베스파시아누스의 로마 황제 통치권 인수에 관한 이 '복음들'에 맞서, 마르코 복음서는 예수가 선포하는 하느님 나라의 시작에 관한 복음을 내세우고 있는 것이다.''' > >마르코 복음서는 병행과 대조 기법을 즐겨 사용한다. '''베스파시아누스에게 권력으로의 도약 기회가 된 것은, 유다인들의 봉기{{{-2 (66년부터)}}}의 진압과 뒤이은 예루살렘의 파괴{{{-2 (이것은 베스파시아누스의 아들 티투스에 의해 완료되었다)}}}였다.''' ___[[갈릴래아]]에서의 첫 번째 소탕 작전 이후 베스파시아누스는 (겨울 동안 중단한 다음) 카이사리아 필리피에서부터 차근차근 남쪽으로 진군했는데, 목적지는 예루살렘이었다___{{{-2 ([[요세푸스]] 『유다 전쟁사』 III 443-446)}}}. ___마르코 복음서에서는 예수가 갈릴래아에서 첫 활동 뒤, 카이사리아 필리피로부터 예루살렘으로 이동___하는데, '''이는 정복하고 파괴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치유하고 가르치기 위해, 그리고 마침내는 스스로 십자가에 처형되기 위해서였다.''' 그런 예수를 로마 군인들이 임금으로 치장하고 충성 맹세 연극을 하며 조롱한 것은 아주 그럴 만했다. "유다인들의 임금님, 만세!"{{{-2 (15,18)}}}. 그러나 로마군 백인대장의 안목은 전혀 달랐으니, 그는 예수가 죽는 것을 보면서 이렇게 말한다: '''"참으로 이 사람은 하느님의 아드님(υἱὸς θεοῦ)이셨다(ἦν)"{{{-2 (15,39)}}}.''' 그러나 이 말은 그리스도인들의 귀에는 아직 미흡한 신앙고백이니, '하느님'과 '아드님'에 모두 정관사가 붙어 있지 않으며{{{-2 (3,11에는 붙어 있다; 참조: 1,11; 9,7)}}}, 과거형{{{-2 ('이셨다')}}} 표현은 당혹스럽다. 하지만 로마인들의 귀에는 이 칭호가 도발적이다. 왜냐하면''' '이런저런 신의 아들'은 로마 황제의 생존 시 칭호'''이기 때문이다. 황제의 아비는 신격화되며{{{-2 (divus)}}}, 이에 따라 황제 자신은 '신의 아들'{{{-2 (divi filius)}}}로 불릴 수 있는데, 이것이 그리스어 비문{{{-2 (碑文)}}} 등에서 보통 '휘오스 테우'{{{-2 (υἱὸς θεοῦ: 관사 붙지 않음)}}}로 번역되었다. > >'''로마제국의 '일인자'에게 엄격히 유보되어 있는 바로 이 황제 칭호를 사용하여, 마르코는 자기 주인공을 작품 맨 앞에서 소개한다{{{-2 (1,1)}}}. 그리고 나중에 추가적으로 로마군 백인대장이 이 동일한 칭호를 십자가에 처형된 예수에게, 즉 반란자와 노예들에게만 시행토록 규정되어 있으며 당사자의 인간 품위를 박탈하는 처형 방식으로 죽은 사람에게 적용한다. '''백인대장은 십자가 옆에서 자신의 '고백'을 통해 사회적인 가치 전도를 실행한 셈이거니와, 이 가치 전도는 길 위에서 예수 가르침의 핵심이다. 이 가치 전도를 백인대장은 베스파시아누스 역시 자신을 위해 요구했던 황제 칭호를 통해 표현한 것이다. >---- >-Martin Ebner/Stefan Schreiber (Hrsg.), 『신약성경 개론』, 이종한 옮김, 분도출판사, 2013, p263-264 >'''눈 밝은 독자들에게는 승전한 로마의 최고 사령관이나 황제의 개선 행진을 연상시킨다.''' > >예수에 대한 채찍질은 '[[총독]] 관저'{{{-2 (praetorium)}}}라고 지칭된 곳에서 집행되었다. 이 낱말은 통상 사령관 막사를 가리킨다. 한 부대, 그러니까 600-1,000명의 군인이 그곳에 집합했다.{{{-2 (15,16)}}} 로마의 마르스{{{-2 (군신)}}} 벌판에서의 개선 행진에서도 이와 똑같은 부대가 편성되었다. 그런 다음 전날 밤을 사령관 막사에서 보낸 승전 사령관에게 개선장군의 표장{{{-2 (標章)}}}들{{{-2 (자주색 긴 겉옷과 월계관 등)}}}이 입혀지고 씌워진다. 그러고는 군인들이 그에게 충성 맹세를 한다. 채찍질 장면인 15,17-19는 이 의식{{{-2 (儀式)}}}일 좀 기이하게 뒤집어 놓은 것이다. 엄숙하게 열을 지어 로마 시 거리들 사이로 굽이굽이 이어지는 개선 행진의 절정에서 개선장군에게 포도주가 건네지는데, 그는 마시기를 거부한다{{{-2 (15,23 참조)}}}. 이어서 축하 잔치의 서막인 감사 한물 봉정은, 한 전령이 적군 사령관의 죽음을 보고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이 적군 사령관은 개선 행진 내내 사람들에게 보여지기 위해, 전장에서부터 끌려온 것이다. > >마르코의 수난사화에서는 이 역할 역시 '개선장군'인 예수 자신의 몫이다. 아마 이보다 더 미묘하고 도발적인 역할 전도{{{-2 (顚倒)}}}는 없을 것이다. '''특히 복음서 수신 공동체를 로마에 자리매김한다면, 그들은 베스파시아누스의 개선 행진을 생생히 떠올렸을 것이다{{{-2 (요세푸스 『유다 전쟁사』 VII 123-157 참조)}}}. '''또 한 가지 진기한 세부 사항도 특별한 구실을 했을 것이다. 베스파시아누스는 개선 행진 때 두 아들을 동반시켰으니, 이를테면 권력 트리오를 과시하자는 것이었다. 반면 마르코의 수난사화에는 무력 트리오가 나온다. 예수는 두 강도 사이의 십자가에 못 박힌다.{{{-2 (15,27)}}} 극명하게 대비되는 이 모습에서, 예수의 오른쪽과 완쪽이라는 "영예로운 자리"{{{-2 (10,37)}}}가 예수의 길을 따라가는 사람들에게 무엇을 의미하는지가 분명해진다. >---- >-같은 책 268-269쪽. 곧, '''"신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에우앙겔리온의 시작"'''{{{-2 (직역)}}}[* Ἀρχὴ τοῦ εὐαγγελίου Ἰησοῦ Χριστοῦ υἱοῦ θεοῦ.{{{[}}}Archē tou euangeliou Iēsou Christou huiou theou.{{{]}}}]이라는 이 책의 헤드라인에서 알 수 있듯이, 1세기 교회는 예수를 단지 지혜의 스승이나 윤리 교사로 기억한 것이 아니다. 그들은 로마의 공권력을 딱히 부정한 것은 아니지만, '주님이요 신'[* "dominus et deus",{{{-2 (수에토니우스 『도미티아누스 황제 전기』 13,1-2)}}}]인 황제의 에우앙겔리온이 메아리치는 지중해 세계의 중심부 로마시에서, 황제의 위치를 상대화시키고는 '''세상의 진정한 [[아우구스투스|아우구스투스{{{-2 (Augustus, 존엄하신 분)}}}]]이자 [[왕중왕]]이자 [[천자|천자{{{-2 (天子, υἱὸς θεοῦ)}}}]]인 예수의 에우앙겔리온을 선포한 것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